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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테드창 작가의 SF 단편 모음집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각 에피소드마다 줄거리와 느낀 점을 써볼 것이다.
-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이슬람 배경으로 대주교한테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이야기가 전개되어 특이하였다. 주인공은 어느 날 특이한 물건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가 일종의 타임머신 역할을 하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 가게 주인은 그 문을 이용했던 손님들의 이야기를 풀어준다. 미래의 자신과 만나 부유해진 사람, 미래의 자기자신 돈을 훔쳐 결국 평생 가난하게 사는 사람, 과거의 남편을 만나 도와주고 즐기다 온 사람. 주인공은 이 이야기들을 듣고 과거로 가서 아내를 구하려고 하나 끝내 구하지 못하고 대신 아내의 유언만 들으며 끝이 난다. 타임머신에 대한 설정이 탄탄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풀어내는 방식도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이 이야기는 무한히 순환하는 시간선에서 진행된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 영향을 주며 타임머신을 매개로 영원히 순환한다. 시간 여행은 각종 매체의 단골 소재이다. 일반적으로는 과거로 가서 자신의 미래를 바꾼다. 어벤져스나, 백투더퓨처 같은 영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보통 타임머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대가를 치르는 일이 많아,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 전개일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대가는 없다. 다만 그 사이의 회개, 경험, 사랑 의 의미는 불변함을 알려준다. 작가노트를 보니 여러가지 설정을 의도했다고 한다. 기존 시간여행 작품들에서 과거를 바꾸어도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게 싫어, 과거를 바꾸더라도 비극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작중 배경이 이슬람인 이유가 여기서 나온 것 같다. 이슬람은 타 종교보다 운명에 순응하는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 숨
책 제목이기도 한 '숨' 이다. 호흡을 하는 금속 외계생명체 이야기를 다룬다. 금속 외계생명체인 주인공은 자신들이 어떻게 기억을 하는지 원리가 궁금하여 스스로를 해부하기로 한다. 금박에 새기고 첨필로 읽어서 기억된다는 기존의 학설과 달리 머리 속의 공기 흐름 자체가 기억임을 알아낸다. 공기의 흐름은 기압차이로 만들어지며, 행성 내부에서 외부로 공기를 뽑아서 호흡에 쓰는 시스템이었다. 근데 이 세상은 알고보니 닫힌계로 언젠가 행성 내부의 공기 기압과 외부 기압이 같아지면 공기의 흐름이 사라져 기억할 수 없고 모든 작동이 멈춰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는 기계 생명체가 스스로를 해부한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로봇이 자신 회로를 스스로 들여다 보는 셈인데, 이런 상상은 어떻게 했을까? 피조물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문을 가진다. 여기서 '어떻게'의 방식에 따라 누군가는 신을 찾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분석한다. 이 단편은 후자였다. 우리는 뇌로 기억을 하고 호흡이 멈추면 죽고,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서도 호흡을 해야 기억을 하고, 호흡을 멈추면 기억이 사라져 죽으며, 닫힌계로 언젠가 죽는다. 물리학에서는 차가운 우주라고 한다. 에너지는 빅뱅 때로 제한되어 있으나 공간은 팽창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팽창하는 공간 대비 에너지가 줄어들어 모든 게 식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에너지는 불변이지만 엔트로피를 늘리는 존재라고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 말이 숨을 관통하는 것 같다.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디지털 생명체인 디지언트가 보편화된 미래 사회를 다룬다. 이 디지언트들은 게놈 창발 알고리즘을 통해 똑같은 디지언트를 분양받아도 양육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자란다. 그리고 이 가상세계의 디지털 생명체인 디지언트들은 현실의 로봇에 불러오면서 현실속에서도 기를 수 있다. 또한 체크포인트 기능을 통해 며칠전으로 모든 기억을 롤백시키거나 정지로 냉동인간과 같은 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다. 처음 디지언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점차 그것에 질린 사람들에 의해 유기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디지언트를 연구하는 동료들도 현실의 아이가 생기거나 한다는 이유로 하나 둘 떠난다. 디지언트들은 실험결과 양육자가 없이 자기들끼리만 있을때는 성장할 수 없는 존재이고 현실 세계에서 기능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지적 한계가 있는 존재임이 들어난다. 디지언트들은 자유의지가 있는 법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해하지만, 연구원 양육자들은 언제쯤 그렇게 해야할지 고민한다. 디지언트가 속했던 가상세계가 서비스 종료로 매우 축소되며 디지언트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육자들은 많은 노력을 하나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섹스돌 사업에서 디지언트의 보상회로를 조작해 섹스가능하게 할 경우 디지언트의 세계를 이식하는 비용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에 양육자들은 이를 거부하나 강압이 없다는 전제 하에 고민하게 된다. 디지언트의 보상회로를 섹스돌에 적합하게 조작하게 되면 뇌에 강제로 약물을 꼽아 넣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양육자 중 하나인 데릭은 짝사랑하는 애나가 자금을 벌기 위해 약물패치를 착용하고 일하는 걸 막기 위해 디지언트들에게 의사를 묻고 제안을 받아들인다. 내가 쓴 내용은 매우 간략히 요약한 것이고, 실제로는 더 풍성한 내용들이 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말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실제로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이런 딱딱한 단어를 바탕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니 놀랍다. 이 이야기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자유를 준다면 무엇이 진정한 자유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인공지능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인공지능이 양육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기서는 양육자와 피 양육자의 관계를 부여해 한층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처음에는 희망찼다가 갈수록 쇠락해져만 가는 퇴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건 소설도 좋지만 나중에 넷플릭스 같은데서 영화나 드라마로 꼭 나왔으면 좋겠다.
-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데이시는 보모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걸 보고, 자신이 직접 이상적인 로봇 보모를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자식을 입양해 로봇 보모가 유효한지 실험한다. 그러나 2살까지는 로봇 보모로 키우다가 고아원에 아이를 입양보낸다. 아이는 인간이 아닌 로봇보모와 애착을 형성했다. 오히려 인간이 양육할때는 발달장애를 보이고 로봇음성, 로봇팔 등을 이용해 양육할때 더 효과적으로 양육되었다는 내용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내용은 이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지만 너무 디테일하고 현실적으로 서술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는 원숭이 실험에서 이야기를 따온것 같다. 아기원숭이들이 가짜 어미 모형중 어느것을 더 선호하는지 찾는 실험이었다. 젖이 나오는 철사어미 인형보다, 솜으로 된 젖이 나오지 않은 어미원숭이 인형을 선택했다. 스킨십을 통한 정서적 안정이 의식주를 뛰어넘을 정도로 중요하단 것이다. 또 생각난 건 부잣집 고아원이 가난한집 고아원보다 더 영아사망율이 높았던 사례이다. 부잣집 고아원이 더 위생적으로 완벽했으나 그들은 위생에 집착한 나머지 아기들을 안아주지 않았고, 의문사하는 아이들은 그만큼 증가하였다. 이처럼 스킨십을 통한 애착관계는 생명체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한번 더 꼬아 반대로 로봇에게 애착이 형성되어 그것을 부모로 인식한다면? 그래서 오히려 로봇 보모와 있을때 더 아이가 잘 자란다면?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 사전적 진실, 감정적 진실
라이프 로그라는 기술로 인간의 모든 기억이 망막에 탑재된 렌즈로 촬영된 영상물로 대체된 사회를 그린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문자를 처음 배우는 부족에 대해 그린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리멤(대체기억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으로 관계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사실들을 굳이 끄집어 낼 수 있게 된 것에 반감을 느낀다. 인간 간의 관계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망각으로 발전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딸아이과 언쟁을 벌였던 일을 상기하며 이런 일들이 다시 생생히 끄집어 볼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 회복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하지만, 니콜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 보니 실제로 폭언을 한 건 니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고,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한건 자신이 아닌 철저히 니콜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왜곡 되어 있으며 디지털 기억이 타인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기억이 되길 바라며 중간에 삽입된 다른 부족의 이야기는 사전적 진실과 감정적 진실을 담기 위한 주인공의 사실 기반 창작 소설임을 밝힌다. 중간에 삽입된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부족의 아이가 문자를 배우고 기록을 알게 되며 서기로써 일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자체와 공공에 유리한 합리적인 사실의 차이를 알게 된다. 즉 문자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었으며 그로 인한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사고방식까지 달라진 것이다. 이 이야기로 느낀건 많은데 적절히 표현할 말은 찾지 못하겠다. 보통 이런 소설의 경우 미래 기술을 비판하는데 여기서는 비판하다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이 특이하다고는 느꼈다. 이 글은 사실과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억은 불완전하며 우리의 기억은 사실에 저마다의 해석과 왜곡을 덧붙여 그려낸 서사이다. 우리는 이러한 서사를 존중해야 할것인가 그렇다면 존중을 위해 진짜 사실을 잊혀져도 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2개의 서로다른 이야기는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부족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만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 이전에 해석도 중요하며, 그것이 더 바람직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리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 하기에 우리의 서사는 사실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오히려 사실을 되짚고 점검할때 서로의 관계는 나아질 수 있다는 결론을 맞이한다. 내가 이 글들의 교훈을 제대로 해석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해석대로라면 이글은 2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공명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한 것 역시 사전적 진실이 아닌 내 감정적 진실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 옴팔로스
기독교 고고학자의 시점을 제시된다. 당시 과학계는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했으며 우리에게 부여된 애정과 특별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종교와 과학이 일치된 사회인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 내어서 하느님이 직접 처음으로 만든, 부모가 없는 태초의 생명체들 역시 존재했으며 이 고고학자는 그런 것들을 연구한다. 하지만 어느 날 태초의 화석이 개인 수집가라는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것이 장물이라 의심해 그 개인 수집가를 추적하게 된다. 그 개인 수집가라는 사람을 잡고보니 박물관장의 딸이었으며, 박물관 창고에 갇히는 것보다는 전시에 기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 속에서 ‘신앙을 위협하는 논문’ 이 발표될 것임을 알게 된다. 여기 세계관에서는 빛을 전달하는 매질인 에테르가 실존한다. 즉, 에테르 기류에 따라서 빛의 속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에테르와 무관하게 항상 절대 정지상태에 있는 행성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애정하신 세상의 중심은 이곳이 아니라 저곳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이 이야가의 제목인 '움팔로스'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었다. 에테르 나올때 이 세계의 세계관은 어떤 과학사실을 기반을 두고 있는 지 헷갈렸다. 실제로 빛의 속도 실험을 통해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기독교도여서 종교의 의미를 주장하는 소설인가 싶었다. 그런데 내용은 우리가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가 였다. 책에서 나온 '과학은 진리의 탐구만이 아니라 의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라는게 이 세계관을 가장 잘 비추어 주는 것 같다. 우리가 신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왜’가 아닌 ‘어떻게’ 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라는 교훈을 준다.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나의 또 다른 평행세계를 보여주는 프리즘 이라는 기계가 있다. 평행세계는 오로지 이 프리즘을 켰을때 분기가 갈라지며, 서로에게 정보를 제한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평행세계의 자신을 보며 현재의 선택이 맞는지 불안해하며 확신을 얻기위해 쓰다가 중독된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에 숨어들어 프리즘 매매를 노리는 사람인 모로와 냇이 있다. 모로는 무리하게 사기를 벌이다 총맞고 죽었고, 냇은 이전에 마약 중독자였고, 모로가 죽은 이후, 돈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모임의 심리치료사 대이애나는 냇이 익명으로 선물해준 트라우마의 과거 분기들을 보고 자신의 선택에 의한 죄책감을 덜게 된다. 나에게는 이 단편이 가장 재밌었다. 세계관이 탄탄하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가장 따뜻한 결말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평행세계와 저 생각을 이을 수 있었을까? 모든 단편을 다 잘썼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원래 나는 같은 책을 2번 읽지 않는다. 독서 자체의 의미를 즐기기보다는 책에서 무엇을 뽑아 낼 수 있을지 기록하며, 나중에는 그 기록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번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소설은 SF로 위장한 작가의 프로파간다 물이며, 모든 설정은 단 한 장면과 메시지를 위해 버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SF 소설에 대한 실망감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이게 SF 장르다.' 라는 것을 보여준것 같다. 설정 역시 매우 튼튼하고, 모든 설정은 버릴 것 없이 모두에게 생각할만한 주제를 던져준다. 작가의 사상 주입 없이 깨달음을 준다. 책의 단점을 굳이 뽑자면, 문체에 전문용어도 많고 좀 어려워서 급하게 읽으면 안된다.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이 작가의 지성을 독자인 내가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용 중간중간 나오는 비유들도 이과식 비유이지만 말하려는 내용에 일치하는 비유이다. 처음에는 앞에 한두개만 잘쓰고 뒤에는 앞의 명성으로 그냥 무난히 묻어가며 파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갈수록 잘 쓰는 버릴 단편이 없는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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