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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트럼프와 힐러리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그 때를 배경으로 나온 책이다. 지금도 트럼프는 상대가 바뀌었을 뿐 대선을 치르고 있다. 그래서 책이 나온지는 몇년이 지났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이 이 책을 읽기 좋은 때였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능력주의' 라는 말은 '학력주의' 라고 바꿔서 번역하는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힐러리와의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는 능력주의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대부분은 트럼프를,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대부분은 힐러리를 지지했다. 이러한 학력에 따른 지지성향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크게 작용하였다. 지역이나 나이 성별보다도 말이다. 그 이유로 기존에 미국이 가졌던 모토인 '누구나 충분히 배워서 성공할 수 있다.' 가 반작용으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을 압박하여 반발심리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해석이다.
능력주의는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를 전제로 한다. 이는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자명한 명제같지만, 이 명제가 참이라면 대우명제도 참이 된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무능력한 탓이다.' 역시 참이 된다. 이런 사상은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산트 직업윤리, 즉 기독교적 사고에서도 능력주의가 기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구원받는다. 만약 저 사람이 재앙을 받았다면 그건 선하지 못한 무언가 행동을 한 것이다.' 에서 시작한 것이다. 즉, 능력주의는 '신 없는 섭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자가 승리한다는 믿음은 반대로 패배자는 악덕하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 정치에서 자주 사용되는 '역사의 옳은 편' 이라는 표현 역시 이런 섭리론을 뒷받침한다.
지금까지의 미국의 민주당은 '교육'을 통한 기회의 평등으로 노동자를 교육해 화이트컬러에 앉혀 평등을 이룬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노동자 자체가 정치권력이 없다는 것을 바꾸지 못했고, 학력주의를 강화하는 꼴을 낳았다. 오히려 교육을 강조한게 엘리트들에게 더 특권의식을 갖게한 것이다. 오바마때까지 이런 능력주의적 담론을 남용했고, 트럼프는 이런 담론을 이야기하지 않고 위대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말했기에 당선되었다. 힐러리는 능력주의적 담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 남은 사회적 하층민의 자리까지 파괴하려 했다. 평등과 공정을 위한다는 담론이 누군가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과거의 신분제 사회를 상상해보자. 불평등지수가 같다고 할때 신분제 사회보다 능력주의 사회가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신분제 사회는 본인의 태생상 어쩔 수 없이 결정된거라 아무도 비난하지 않지만 능력주의사회에서 실패는 본인의 책임이기에 훨씬 더 비난받는다. 반대로 기회의 평등이 온전히 보장된 가상의 완성된 능력주의 세계관을 생각해보자. 그 세계에서도 2가지 결점이 있는데 첫째는 '그게 정의로운가'이고, 두번째는 그게 좋은 사회일지 이다. 완벽한 능력주의 사회는 사회적 이동성이 완벽한 사회를 뜻한다. 하지만 그게 평등을 낳지는 않는다. 아무도 불평등을 개선하려 하지 않을거다. 모두 사다리를 오를 기회는 주지만 사다리의 끝단과 끝단사이의 길이는 신경쓰지 않는다.
능력주의의 폐해는 승자들에게도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정신건강이다. 항상 싸우고 강박적으로 학습과 시험이 시달리던 이들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다른 집단보다 정신병에 취약했다. 또한 경쟁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그 안에서 내부 단체로도 급을 나누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작가는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 말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한다. 모두가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패자는 나온다. 다른조건이 모두 평등하다고 해도 재능에 따른 운은 평등한지 말이다. 재능은 행운의 결과이며, 그 재능을 높이치는지 낮게치는지 사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가령 프로게이머 '페이커' 선수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클 펠프스 같은 휼륭한 다른 선수들도 의식주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선수로써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대안으로 대학에 기초적인 1차 선별 최저기준만 두고 그 이후로는 무작위에 맡긴다면 이런 능력주의적 폐해는 줄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대학을 인재선별기로써의 기능이 축소되고. 남는 예산을 직업훈련에 투자하는 것이다. 냉혹한 결과의 평등만이 기회의 평등의 대체제가 아니다. 조건의 평등도 있다. 꼭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이나 승자가 아니더라도 존엄하고 고상한 삶을 공동체 논의를 통해 숙의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했을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다. 역사적으로도 인적자원과 지적자원을 통해서 성장하였다. 즉 천연자원이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천연자원이 풍부한 미국과는 상황이 다른 것 같다. 대학추첨제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결국 이러한 경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풍선효과로 대학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인재선별기로 변질될 것이다. 즉 과도한 경쟁 자체가 필요치 않은 사회가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저출산으로 학력주의는 감소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따라할 게 아니라 더 다방면의 논의가 숙고되어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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