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그리스 신화들이 신들의 이야기였다면 일리아스와 오딋세이아는 신보다 인간 서사에 더 가깝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 군과 트로이 군의 공방전을 다룬다. 트로이의 목마나 파리스의 선택 등 오늘날까지도 모티브가 되는 장면이 많지만, 내가 생각하는 백미는 헥토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일리아스가 인간 서사에 가깝다고는 했지만 신들의 개입에 따라 전쟁의 전황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아테나나 아레스 같은 신들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해서 싸우며, 신과 비견되는 무력인 아킬레우스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활약해 나간다. 이에 반해 헥토르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그는 국가와 가족을 위해 싸우는 인간적인 영웅으로, 단순히 전쟁과 명예만을 추구했던 아킬레우스와는 대조적이다. 헥토르는 전쟁터에서 용맹한 전..
세상 분석
신화로 보는 불공평한 사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인간처럼 실수를 하며, 인간처럼 폭력적이다. 하지만 전능한 능력으로써 인간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서며, 인간이 선을 넘어서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는다. 그들은 잔인하게 보복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도덕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같은 남신들은 수많은 간통과 강간을 저질렀고, 헤라와 같은 여신은 제우스의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잔혹하게 괴롭힌다. 이러한 신화적 특성들은 당시 지도층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지배계급의 어떤 행동에도 피지배 계급이 복종하도록 암암리에 세뇌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 시대가 지나면서 그들의 도덕적, 능력적 결함은 갈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
"내가 만약에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기능과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무런 기능이 없어도 존중 받을 수 있는가? 반대로 당신은 존중할 수 있는가? 우리는 기능과 존재, 2가지로 구성된다. 기능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직장에 다니며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나. 훌륭한 자식 역할을 하는 나. 부모 노릇을 하는 나. 모두 우리가 해내는 기능이다. 반대로 존재는 우리의 몸뚱아리, 물질대사와 호흡을 반복하는 육신과 영혼 그 자체를 말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이 둘을 분리해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능과 존..
잔인한 질서, 다정한 혼돈.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문장일 것이다. 이 책은 서술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일대기에 대해 조사하는 내용과 작가 스스로의 회상 부분이 합쳐져 있다. 데이비드는 젊은 시절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종을 해석하려는 낡은 생각을 타파하고 새로운 분류 기준을 만들어 낸다. 특히 그는 가장 자료가 부족한 어류에 관심이 많아, 직접 생생한 현장 속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연구물 손상, 동료와 자녀의 사망, 해고 등 다양한 역경을 겪는다. 데이비드는 이해 굴하지 않고 물고기를 더욱 과격한 방법으로 수집하고, 더 거친 모습으로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일에 몰두한다. 자연은 그의 연구를 비웃듯이 지진으로 그의 모든 연구를 파괴시키지만 그는 파괴된..
친구가 이전에 피로사회를 추천했었다. 그리고 그 추천받은 기억을 잊고 있었다. 서점에 가니,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작가의 이름을 보고, 친구가 이 책을 추천했던 기억이 상기되어 읽었다.책은 지난 세기를 "면역학적인 시대"로 정의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자를 부정하는 부정성의 시대였다. 외부의 해로운 병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는 행위와 닮아 있다.하지만 지금은 긍정성의 폭력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대다.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당위를 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강박이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 이를테면 우울증 같은 문제를 낳는다.과거에는 타자와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이 피해자이자 가해자, ..
삶을 지탱하는데 있어 몇가지 의문을 매듭지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소설 파랑새에서는 파랑새라는 행복을 찾아 다른 모든 곳을 떠돌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리고 파랑새는 바로 주인공 주위에 있던 것을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는 행복이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만 달라져도, 깨달음의 마지막 문장에 조금만 변용이 일어나도 내용은 아예 달라진다. 만약 파랑새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면? 마지막 순간의 근처에서도 찾지 못했다면? 파랑새는 애초에 없던 것이라면? 나는 이런 의문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을 판단하..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작 중에서 그가 처음 발화한 말이다. 그는 언제나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언제나 타인에게 끼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주변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정욕을 비롯한 욕망은 있지만, 생리적 욕구 이외의 욕구는 느끼지 않으며, 계속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양로원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조차 그는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변호한다. 뫼르소는 자신의 삶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결혼조차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어떤 승..
책의 내용을 한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정의는 공공복리, 자유, 미덕 3가지 기둥이 받치고 있다. 공공복리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하지만 이를 계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난을 당해 동료를 죽이고 그 시체를 먹고 생존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것이 공공복리적으로 옳은가?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모두 죽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몇 명이라도 더 살아서 돌아왔으니 생존한 인원수를 계산해볼 때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하게 보지 말고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로 넓게 바라보자. 이 소식이 알려진다면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극한 상황에서는 식인을 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결국 공공복리적으로 더 큰 손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