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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이전에 피로사회를 추천했었다. 그리고 그 추천받은 기억을 잊고 있었다. 서점에 가니,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작가의 이름을 보고, 친구가 이 책을 추천했던 기억이 상기되어 읽었다.
책은 지난 세기를 "면역학적인 시대"로 정의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자를 부정하는 부정성의 시대였다. 외부의 해로운 병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는 행위와 닮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긍정성의 폭력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대다.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당위를 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강박이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 이를테면 우울증 같은 문제를 낳는다.
과거에는 타자와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이 피해자이자 가해자, 간수이자 수감자가 된다.
우울증은 권위적 강제와 금지가 사라진 뒤 나타났다.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받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이는 자아를 소진시키며 결국 탈진에 이르게 한다.
과거에는 심심함을 느끼며 사색할 시간이 있었다. 비생산적인 시간을 통해 더 큰 문화적 도약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심심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귀 기울이지 못하며, 공동체는 사라지고 사색 없는 노동만이 반복된다.
사색에서 오는 평온은 사라지고, 그저 부산히 움직이는 눈과 불안만 남았다. 근대의 신은 우리의 삶에 가치를 부여했다.
신은 우리의 행위가 평온하고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질 것임을 약속했기에, 비생산적 이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신의 죽음 이후, 우리의 존재 자체는 존중받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삶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책에서는 이를 "벌거벗겨진 삶"이라 표현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는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받아들이며 해석하는 과정이 배움의 본질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모든 자극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활동과잉 상태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이런 활동과잉은 궁극적으로 더 큰 수동성으로 이어진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성과는 오히려 더 큰 구속을 만들어낸다.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며 빠르게 계산하는 활동은 멍청한 것이다.
컴퓨터가 아무리 빠르게 연산해도, 그것이 우리의 정신보다 고차적인 활동이라 할 수 없다.
멈추고 사유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사유를 계산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이 책의 모든 구절이 나와 같았다. 책에서 말하는 현대인이라는 집합에 나 역시 그 원소였다. 끊임없이 나는 불안해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불안하며, 앞으로도 불안해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는 언제 직업을 잃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지적 활동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붉은 여왕의 저주에 걸려있다. 모두가 달리는 상황속, 나만 달리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괴로웠다. 책 한 권으로 이 괴로움이 해결되었느냐 하면은 그것은 아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사라질 불안이었으면 평생 시달리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책 역시 무위와 피로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하나 사회 자체를 바꿀만한 조언은 아니다. 내 옆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가고 있는데, 내가 진정한 무위를 누리며 평온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책 자체는 현대 사회를 정확히 설명하고, 긍정성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제기한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나의 모든 괴로움, 불안이 해소되는 날이 온다면 이 책이 그 첫 단추가 되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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