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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작 중에서 그가 처음 발화한 말이다. 그는 언제나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언제나 타인에게 끼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주변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정욕을 비롯한 욕망은 있지만, 생리적 욕구 이외의 욕구는 느끼지 않으며, 계속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양로원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조차 그는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변호한다.
뫼르소는 자신의 삶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결혼조차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어떤 승리도 슬픔도 죽음도 분노도 그저 텍스트로만 받아들이며, 그 의미를 연결하지 않는다. 이처럼 뫼르소의 태도는 이인증과 게슈탈트 붕괴를 연상시킨다. 다른 책에서는 이런 무지를 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은 우리의 무심함이, 이후의 일을 신경쓰지 않는 무지가 거대한 악을 만들어 내는 '악의 평범성'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악이 아니다. 그런 가치들조차도 허무하다.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인간 존재의 허무와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인간실격의 주인공처럼 거대한 우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뫼르소의 주된 감정은 우울이 아닌 허무이다. 우리의 삶은 때로 전혀 관련 없는 일로 곡해받고 단정 지어지며, 우리가 타인에게 그러했 듯 타인도 우리에게 그러하다. 신학을 이야기하는 할아버지나, 늙은 개와 주인의 관계처럼 삶은 단지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법, 나라, 돈, 부동산 같은 것들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관념에 불과하며, 우리의 신념이나 도덕관조차 정답이 아니라 상상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추상적 가치들도 시대에 따라 모습을 변모해왔다. 또한 어떤 가치들은 종교나 장소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장소에서 믿는 사람들끼리만 작용하는 가치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죽음의 실존을 깨닫는다. 그는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이는 어머니의 죽음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부조리를 넘어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삶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다. 부조리를 알아챈다면,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반대로 우리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해낼 수도 있다.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부조리와 실존, 허무와 생의 의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역설적으로 카뮈는 3부작을 완성하기 전에, 교통사고라는 거대한 부조리로 죽었다. 그의 삶 자체가 부조리를 말하는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극이었던 것이다.
'상실의 시대' 주인공은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마음가는 대로 행동한다. '인간실격'의 주인공은 세상이, 부조리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은 행동을 하지만 부조리로 인해 죽는다. 각종 소설들에 녹아있는 부조리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은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지프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삶의 가치는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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