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분석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걍판자 2025. 3. 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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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질서, 다정한 혼돈.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문장일 것이다. 
 
이 책은 서술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일대기에 대해 조사하는 내용과 작가 스스로의 회상 부분이 합쳐져 있다. 데이비드는 젊은 시절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종을 해석하려는 낡은 생각을 타파하고 새로운 분류 기준을 만들어 낸다. 특히 그는 가장 자료가 부족한 어류에 관심이 많아, 직접 생생한 현장 속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연구물 손상, 동료와 자녀의 사망, 해고 등 다양한 역경을 겪는다. 데이비드는 이해 굴하지 않고 물고기를 더욱 과격한 방법으로 수집하고, 더 거친 모습으로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일에 몰두한다. 자연은 그의 연구를 비웃듯이 지진으로 그의 모든 연구를 파괴시키지만 그는 파괴된 연구 표본들을 재건해간다. 작가는 이런 데이비드의 일대기를 조사하며 인간의 의지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행적에 대해 의문스러운 부분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그는 물고기 채집 방법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였으며, 우생학을 보급시키는데 일조했다. 그가 역경을 겪을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자연의 사다리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버텼으나, 그 신념이 점점 타락해 간 것이다. 그가 만드려는 자연의 사다리는 궁극적으로 종이 명확히 분류되며 그 사이의 위계관계가 있는 체계였다. 그 체계는 말년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밀고나가도 된다는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우열과 수직적 구조만이 모든 인생의 부조리와 혼돈을 극복하는 그의 도피처였을 것이다. 이런 그의 말년 행보는 잘 알려지지 않아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사고로도, 상실로도, 지진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그를 무너뜨릴 단 하나의 명제를 그 스스로 만들게 하였다. 
 
 그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명제였다. 데이비드 이후 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이어받았는데, 사실 그가 분류한 수직적 체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육지에 사는 모든 동물을 '뭍고기'라고 하지 않듯이 '물고기'도 실제로는 아무런 연관성 없이 그저 사는 곳만으로 이어진 부실한 체계였던 것이다. 같은 물에 사는 동물이라고 해도 폐호흡인지 아가미호흡인지에 따라 종의 분기는 아예 달라진다. 그가 만들어낸 물고기라는 분류는 붉은 동물과 푸른 동물로 분류하거나 시끄러운 동물과 조용한 동물로 분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알려줄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혼돈으로 가득 차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며, 일부는 이 부조리의 영향에서 벗어나 세상을 해석하고자,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세상의 본질은 결국 질서가 아닌 혼돈이다. 질서란 쉬운 믿음이다. 몇 가지 간단한 명제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 과학의 본질은 질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쉬운 믿음은 세상을 효율적으로 바라보는 훌륭한 색안경이 될 수 있을지언정, 명확한 세계는 보지 못하게 한다. 기존에 알던 것이 틀릴까 봐 무섭다. 우리의 믿음이 결국 공염불일까 너무나도 두렵다. 고대의 사람들도 천구가 돈다는 믿음을 포기하기에는 별을 잃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천동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면서 별을 잃는 대신 우주를 얻었다. 혼돈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세상은 더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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